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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새로 쓰는 17세기 조선 유학사

새로 쓰는 17세기 조선 유학사 - 강지은

조선의 유학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신문의 책 소개 문구를 보고, 저자의 철학이 담겨있는 비교적 가벼운 서적이라 생각했는데 책을 펼처보니 논문에 가까운 학술서였다.
제목에서, '조선조 내부에서도 자발적 근대적 관점이 발현되어 유학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예측을 하며 이 책을 펼쳤었는데 저자는 내가 가진 기대감의 발상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에 대한 논제로 이 책을 서술하였다.
저자는, 아무래도 대만사람인것 같은데,
17세기에 조선조 내부에서도 유학에만 함몰되지 않고 독창적인 사상적 논의의 움직임이 있었다라는 명제는 식민지 시대에 일본 유학사 대비 조선 유학사가 열위에 있다-조선 유학은 주자학에 편향되고, 독창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논리에 대응하기 위해 반대되는 사례들의 존재만으로 무리하게 설정한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17세기에 기존 유학에 이견을 내어 사문난적된 사례들이 있었으나, 그것은 기존 유학에 완전히 벗어나는 의견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주자학의 모순되거나 상충되는 내용이나 난해한 문구에 대한 심화 해석하는 과정에서 표출된 의견이였을 뿐, 기존 체계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새로운 사상적 이론을 제시한 것은 아니였다는 것이다.
덧붙여, 일본의 유학사와 달리 조선의 유학사가 전개된 양상은 두 나라의 역사적 맥락과 유학자들의 특성, 각자의 정체성이 다른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지 어느 나라의 특질이 우수하고 열위하다 말할 수 없는 것이고,
식민사관에 따른 조선조 유학사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역사적 사례들을 실제 이상으로 강조하고 무리하게 연결하여 17세기 주자학에 대한 비판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라는 주장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한 부담감에서 벗어나 실증적인 역사적 전개에 노력하자고 말한다.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박훈'을 보면 메이지 유신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유학을 언급하였다. 거대한 병영국가와 같은 일본이 근대화를 받아들여 행정적 체계를 정착시킨 것은 조닌들의 유학사상이 무인들에게 까지 전파되어 무(武) 중심의 국가에서 사상적 전환, 혹은 통치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착륙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 이 대목을 읽으면서, 조선의 유학은 (내 생각에) 근대화 전환을 실기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종국에는 망국의 원인으로 작동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일본의 유학은 근대화에 기여하게 되었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 책에서 그 차이점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태어나면서 부터 유교 경전을 접하고, 유교 경전의 올바른 해석에 대한 과거 제도를 통해 위정자의 길로 나아가기에 그들의 세상은 곧 유교 경전이 전부라 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에 반하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인 반면, 일본의 유학자들은 본인의 선택에 의해서 유학자의 길로 들어선 만큼 경전의 내용을 좀 더 현실 세계에 적합하도록 사상을 전개해 나갔기 때문이다.

"중국과 조선 유학자들의 경우에는 중화문명의 정수인 경서를 샅샅이 학습하고 과거에 급제하면 위정자의 일원이 되어 이상 실현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 서적의 학습을 통한 사회적 성공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었다. ..... 반면 과거제도가 시행되지 않는 사회에서의 유학자는 경서의 내용과 현실 사회의 연결고리를 스스로 만들어야만 했다."

"조선조의 과거시험에서는 주자학의 해석이 모범답안의 기준이 된다. 즉 관료가 되는 궤도에 오르기 위해 주자학적 해석을 익혀 통달하였다. 16~17세의 조선 유생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주희 주석이 진정 성문덕행의 학문인지 아닌지 의심할 계기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도쿠가와 일본의 유학자들은 <대학>의 도를 몸에 익힌다 하더라도 치인의 지위로 나아가는 통로가 보장되지 않았고, 바로 그 때문에 오히려 과거 합격이라는 목표에 구애받지 않고 사상적 여유를 지닌 채 경서를 마주하여 다양한 발상을 발휘할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지금 이 책을 왜 읽고 있을까 라는 생각과 끝은 봐야지 라는 생각에 책을 몇번 덮었다가 다시 들기를 반복했는데, 책 내용의 어려움 탓도 있었지만 현재의 관점으로 17세기의 조선 유학자들의 사상을 바라보니 답답함이 더 큰 탓이 아니였을까 싶다.
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이였다는 것도 일견 이해가 되면서도 왜 그토록 주희의 사상에 집착하며, 숭배했을까. 세상이 변해도 지켜야 할 사상이라고 생각했으며, 저자의 표현대로 주자학의 연구 심화에 더 나아가 '교조화'되는 양상까지 보이게 된걸까.

"17세기 조선 유학자들은 청나라를 대신하여 중화의 도통을 계승하고자 하였으며 계승할 도의 중심은 바로 주자학이였다"

"당시 사대부는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목숨을 걸고 올바른 도를 실현하려 하였다. 올바른 도의 실현을 자신의 의무로 인식하고 행동하였던 유학자들이 형성한 조선 유학사는,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 형성된 유학사와는 다를 것이다"

"과거제도는 관직자뿐 아니라 생원·진사라는 지식계층을 배출하였다. 그들은 시험 준비를 포함한 독서를 통하여 교양을 습득한 유가 사대부라는 자격을 공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 자격에 상응하는 강렬한 사대부 의식으로 무장하여, 조선 사회를 짊어지고 갈 역군임을 자임하였다"


저자는 반주자학적 움직임이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타당한 것은 아니며, 조선의 유학사는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 만약 반주자학의 선호가 타당하다면, 기존 조선 유학의 비난 받아야 할 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선행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식민사관'에 저항하며 분투했던 한 시대를 쉬게하고 새로운 시대의 관점이 필요하다는 말로 학자로서 제안하며 책을 끝맺는다.

"성격이 판이한 일본과 한국의 유학사가 동일한 틀로 해석되었습니다. 경서의 권위도 관학의 권위도 강하지 않은 일본적 특성에서 보면 '독창'적 경서 해석이 빈번하고 '독창'이 평가 기준이 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를 조선 유학자의 저술에 적용하는 것은 매우 곤란합니다"

"누군가의 새로운 해석이 기존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독창성을 지닌다고 해서 높은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는 생각은, 20세기 진입 전후에 들어온 서양적 학술 관점을 과도하게 적용한 것이거나, 조선시대 유학사를 주자학 맹종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유학사를 부정하는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조선 유학사에 대한 '오해'는 시대의 산물입니다. 단순히 '잘못'으로 치부하고 망각해 버릴 대상이 아니라 연구하여 연원을 밝혀야 하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식민사관'에 저항하며 분투했던 한 시대를 이제는 역사 속에서 편히 쉬게 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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