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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선비, 사무라이 사회를 관찰하다

(21-01) 선비, 사무라이 사회를 관찰하다 - 박상휘

 
새해 첫 독서 포스팅. 작년 1월도 일본 관련 책(일본인 이야기)이였는데, 올해 시작도 일본 관련 역사 책으로 Start.

"역사적 결과물들은 과연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그와 연관된 사람들은 과연 어떠한 과정을 통해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결론을 이루어 낸 것일까?" 

역사관련 책들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하면, 이러한 호기심들에 대한 해소와 동시에 또 다른 더 많은 상상력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임진왜란(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 후 조선과 일본은 국교 재개 하였고 이에 조선은 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하였는데, 말도 잘 안 통하는 이국, 그것도 원수와도 같은 나라에 파견되는 사람들은 어떤 심경으로 일본에서 지냈을까. 라는 호기심으로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다소 학술서 느낌이라, 구매하고 나서 읽기를 시작했다가 몇번을 중단했는데 올해 마음을 다 잡고 완독.

검색을 해보니 조선의 통신사는 1607년 시작으로 1811년까지 11번의 사절단이 일본을 다녀왔다. 저자도 책에 언급했듯 초기에는 일본을 이질적인 존재로 여기었고, 경계와 업신 여기는 태도로 접근하였으나 무려 200여년의 교류를 통해 일본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일정 부분의 교감까지 이루어졌었다.

이 책을 보면서도 못내 아쉬웠던 부분은, 서구 세계가 대항해의 시대를 거쳐 산업혁명을 통해 부국강병을 힘쓰고 있던 시절에도 조선의 지도층들은 '중화'를 제일의 가치로 삼고 '중화, 유교적 가치관'으로 일본과의 교류를 일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수년간의 교류를 통해 통신사들은 일본의 점진적인, 유의미한 변화를 자각했다.
상업과 공업이 발전하여 이것이 백성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심지어 배를 만드는 기술 마저 일본이 우위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네덜란드를 포함한 주변 국가들과의 해상 무역으로 경제가 활성화 되고 있고, 이런 일본의 무역 우위가 '경제학적' 지식이 없어도 조선의 무역에 영향을 미치게 됨을 인지, 보고 하였지만 무언가 가시적인 대책이 이루어 지지는 않았다.


유교적 가치관으로 바라볼 때에, 인(仁) 보다는 무(武)를 중시하며 살육을 일삼는 약육강식의 일본 사회는 오랑캐로 보일 수 밖에 없음은 당연한 듯 보이나, 각종 (소)공업들의 발달과 무역의 성행으로 인한 경제의 발전, 기술력의 역전 상황에서도 통신사들의 위기 신호를 똑바로 인식하지 못한 조선 지도층의 무지와 단지 중국과 가깝기에 얻게된 문화적 우월성의 자의식으로 인한 판단력 부재는 두고두고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든다.
 

안타까움은 한가득이지만, 세상의 중심은 중국이고 세상의 모든 이치가 유교경전이라고 수십년간 믿고 살아온 사람들의 지식 수준으로는 고작 일개 통신사들의 의견을 중하게 여기기도, 그에 적절한 대책을 만들어 실행하기에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그게 조선의 한계 역량이 아니였을까 싶다. 

이 책의 인상적인 부분은, 역설적으로 유교적 가치를 일본의 지식층에게 전파하려 노력하는 와중에 일본과의 관계에 대한 방향성을 정립할 수 있었으며 유교에 대한 논쟁을 통한 일본 문인들과의 정서적 유대의식을 이루어 냈다는 점이다.  조선 지도층에게는 정세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가려버린 유교라는 장애물이 일본에게는 평화를 공존을 가능케 하는 수단으로써 작동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이책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통신사를 보내며 했던 조선의 고민이 현재 시점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언어와 습속을 달리하는 저 바다 건너편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 문제는 모든 조선 문인에게 공통된 고민이었다. 좋든 싫든 간에 우리는 이 세계에서 일본과 공존해야 한다.』
 

"200년간 평화로운 사회에서 평온하게 살아온 나라의 문인들은 400년 이상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계속해온 나라의 군인들을 목격하면서 큰 충돌을 겪었다. 그 충돌은 군사적 충돌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일종의 인간관의 충돌 이었다."

"조선 장인들의 솜씨가 낮은 것은 지식 있는 사람들이 상업이나 공업에 종사하지 않기 때문, 즉 지식층이 생활환경의 향상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 본 것이다.
....이것이 어찌 산과 강에서 나는 재료가 중국과 달라서 그런 것이겠는가? 사람의 솜씨가 미진하여 그런 것이다. 우리 풍속이 지체를 구분하여 사람을 구속하기 때문이다. 지체가 높은 사람은 지식도 높고, 지체가 낮은 사람은 지식도 낮다. 그러나 지체가 높은 사람은 곤궁하여 죽을 지경이 되더라도 태연하게 자기 지식을 자기 안에 가두고 상업이나 공업에 종사라려 들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나라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모두 배우지 못하여 무식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다. 사람이 무식한데 어떻게 교묘한 솜씨를 부려 정밀한 물건을 만들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제품이 아름답지 못한 까닭이다......  " 


" '이역만리 밖의' 사람들과의 교감은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스스로 잘난 체하여 다른 나라를 업신여기'는 우리나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일본'이라는 타자 없이는 획득할 수 없는 것이다. "

"전혀 이질적인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사람들의 내면에는 어떠한 감정이 교차할까? 일본을 다녀온 조선 사절들의 내면에 일어난 감정은 주로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거부감, 호감, 양가적 감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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