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의 힘 - 팀 마샬
지정학 관련 책들은 관심과 흥미를 갖게 만든다.
지리적 요인들은, 과거 수천 년 동안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듯, 크게 변하는 것이 없고 국제 정세의 변화라 할 것들도 (작가들의 관점에 따르면) 지리적 요인들보다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에 지정학 관련 책들에서 매번 뭐 새로울 것들이 있을까 싶지만, 저자들의 관점과 집필 역량 때문인지 읽게 되면 지루하지 않다.
피터 자이한의 책들이 그랬고, 그 이전 읽었던 전략적 비전이 그랬다 (어쩌면 관련 책들이 나올 때마다 이전 내용을 기억 못 해서 새롭게 느껴질 수도)
지리의 힘은 오래전부터 유명했던 책이라, 관심을 갖고 있다가 ebook으로 읽기 시작.
지정학 관련 책들은 책에서 언급되는 새로운 지명들을 지도에서 찾아보며 ···지리적 위치가 미치는 영향을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지 거의 10여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책의 내용이 전혀 근거 없는 상상력이거나 철 지난 유행가처럼 보이지 않으니 그만큼 저자의 지정학적인 이해도와 관점이 돋보인다고 해야 할까.
물론 1권은 오대양 육대주를 망라하며 서술하였기에-아마 첫권을 집필하는 당시에는 3부작이라는 생각조차 없었기에 다양한 부분을 언급하려 했던 듯싶다- 다소 깊이가 없고, 잠재적 강약점이 드러나지 않는 지역은 다뤄지지 않은 아쉬움은 있는데 이를 보완하려는 듯 이후 무려 세권이나 나왔다. 첫 책이 대박이 나서 그런 건가.
1권이 2016년도에 출간되었고, 2권은 22년, 3권이 25년에 나왔는데
왠지 느낌상 첫 권의 대박이 무려 세 권의 연작을 기획하게끔 하지 않았을까 싶다
목차를 보면 1권은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등 강대국들과 지정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국가들 중심으로 다루고 그 외 지역은 국가보다는 권역별로 다루면서 북반구 대부분의 지역에 대해 언급했다. 2권은 1권에서 담지 못한 지역을 다루고 있는데 1권에서 다뤘던 권역에서 지정학적인 중요도가 부상하는 국가들을 다루고 있다. 유럽 내에서의 영국이랄지 발칸반도 인근의 그리스와 튀르키예, 1권에서 중동이라는 권역에서 언급된 사우디 아라비아, 그리고 남반구의 호주 등 1권에서 스킵했던 아쉬움이라도 풀 듯 넓은 지역이라기보다는 몇몇 국가들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3권은 (뜬금없이) 우주 패권을 주제로 제2의 대항해 시대를 연상시키는 여러 국가들의 노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7세기 전후의 대항해 시대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지만 우주라는 소재는 나에게 아직 현실적이지 않기에 2권까지만 구매
특히, 2권은 흥미로운 지역이면서 다른 책에서 다뤄지지 않은 지역들이 다뤄졌기에 보다 만족도가 높다.
영국은 그저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멋지고 쿨한 국가로만 생각을 했었는데, 과거부터 지금까지 유럽 지역 내에서 강대국이 독주하지 못하도록 견제(또는 몽니)하는 그들의 역사적 스탠스(유럽 경제권에는 떨어져나가지 않으려 하지만 유로화는 사용하지 않는, 그래서 브렉시트까지 발생하는 숨은 배경 등)는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다른 이면을 갖고 있음을 새롭게 접하게 되었다. 국가의 정체성은 결국 국가의 생존의 측면에서 전략적이고 이기적일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지중해 동쪽, 발칸반도와 터키를 마주 보고 있는 에게해 영역도 참으로 오묘한 지역이라고 느꼈다. 그냥 막연히 그리스 신화와 아리스토텔레스로만 접했던, 무언가 문명과 철학의 근원 같았던 그리스라는 국가는 여러 가지 관리해야 하는 골치 아픈 지정학적 요인들을 갖고 있다.
'신이 돌과 바위를 흩뿌려 만든 나라'라는 표현처럼 그리스는 발칸반도 내륙과 에게 해 해 지역에 6천여 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칸반도 내륙으로는 민족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공통점이 없는 여러 국가와 국경선을 맞대고 있고, 에게해 건너편으로 튀르키예가 있으며, 6천여 개의 섬들 하나하나는 에게해 남쪽에서부터 지중해 동쪽까지 영향력을 좌우할 수 있을 만큼의 지정학적 중요도가 높다.
발칸 반도를 왜 유럽의 화약고 라고 하는지, 그리고 그 중심에 그리스가 있을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될 법했다.
예전 (서) 유럽 여행을 하면서, 왜 이 나라들은 풍족하고 환경도 깨끗하고, 선진화된 문명을 갖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북유럽 평원이라는 지리적 혜택을 입은 곳과 아닌 곳의 차이 그리고 그 차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과 그에 부응하는 환경적 우연들이 결부된 덕택이었던 듯하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아른햄까지 강가를 따라 달리는 열차 안에서 그 강으로 큰 배들이 화물이건 여객이건 운송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한강과는 다른 네덜란드 강의 쓰임새에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북유럽 평원 지대의 강들은 그저 농업 용수로만 활용되거나 그저 도시의 미관 역할을 담당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렇듯 여러 곳을 연결시켜 주는 운송로의 역할까지 겸비했던 것이었다
다뉴브 강(도나우강)이 그렇게 긴 강인 줄 몰랐었다. 독일 남부부터 동유럽을 거쳐 발칸반도의 끝자락인 흑해까지 흘러가며 유럽 국가 간의 국경선 역할까지 할 지도.
사헬은 아프리카 대륙을 동서로 가로질러 홍해와 대서양까지 연결되는 장장 6천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경로를 형성하고 있다
이곳은 그만큼 안락한 생활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만드는 험난한 지역이다.
(에티오피아)
나라를 부족 집단들로 분리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의심과 상대방에게 갖는 두려움을 은근히 부각시켜서 국가를 쇠약하게 만든다. 하지만 또 분리를 용인해 주지 않으면 자치권을 위해 이들이 국가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국가는 또 쇠약해진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섬세한 균형과 부의 공정한 분배가 필요하다.
터키가 아무리 멀리 가려 해도 늘 그 여정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 나라의 지리다.
(스페인)
유럽인들은 흔히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은 당연히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민족국가라는 개념이 유럽에서 자라났다는 것도 그 이유가 된다. 또한 유럽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당연한 규범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거나 지구 전체를 둘러보면 그 규범과는 한참 거리가 있고, 또 그 경계 안에 여러 민족과 종족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는 <국가의 정체성>이라는 것도 깨지기 쉬운 개념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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