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읽는다 - 히사이시 조, 요로 다케시
음악가와 곤충학자이자 뇌과학자의 대담은 어떤 것일까.
내게 히사이시 조는 무언가 독창적이고 고유한 감각을 표현하는 음악가이자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세계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서로의 작품관을 완벽하게 공감 공유하는 예술가라는 이미지가 강하기에(팀버튼과 대니 앨프먼도 떼어놓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유사점이 있는 듯 하지만 결과물의 정서는 정반대다) 그 이유만으로도 우연찮게 이 책에 머무른 눈길을 거두어 둘일 수 없어 읽게 되었다.
히사이시의 음악을 듣다보면, 그 특유의 분위탓에 영감과 감성을 중시하는 음악가일거라 생각했었는데 외려 그는 (책에서 언급한 것 처럼)음의 구축과 체계적 확장성에 더 무게를 두는 듯 느껴진다.
책은 주로, 하사이시 조가 음악에 관해 본인이 생각하고 있는 질문을 던지면 요로 다케시가 답변을 하는 대담 방식인데 이 답변들이 현학적이고 나름 뇌과학적 측면으로 쉽게 쉽게 풀어나가고 있다.
읽다보면 왠지 이 책의 두 대담자도 그렇고 (이 책에서도 잠깐 언급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나 미야자키 하야오도 그렇고 사물을 바라보는 가치관이라고 해야 할지 느껴지는 정서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각자의 캐릭터가 분명하면서도 서로 통하는, 닮아있는 그 무언가가 있는 듯 느껴진다.
(p38) 교육에서 예술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교육이란 곧 시험을 통과시키는 일이라는 사고방식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정서 교육' 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제 교사와 부모를 막론하고 그 누구도 교육으로 정서적인 부분을 길러 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음악에서 영향을 받는 능력 같은 건 측정할 수 없으니까요. 감성 또는 감수성이라고 부르는 영역인데, 감수성은 측정할 방법이 없어요. ... 측정할 도리도, 비교할 도리도 없기 때문에 결국 외면당합니다. 없는 셈 치는 것을 편하게 여기는 경향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나고 있어요.
음악을 언어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음악이 필요 없겠지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예술이 존재하니까요.
(p79) 전문가용 녹음 장비는 지금도 거의 영국제에요. 일본제도 있기는 있지만, 역시 음질이 영국제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저는 영국인들을 떠올리면 근면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인상이 있는데(웃음), 어떻게 채널이 100개쯤 되는 정교한 콘솔을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역사의 축적이지요. 사회가 확고하게 체계화되어 있으니 개인이 죽도록 일해서 무언가를 만들어 낼 필요가 없어요. 대신 시스템적인 부분에서 힘을 발휘하는 겁니다.
(p103) 저는 음악에서 그런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휴대전화 버튼을 몇 개 누르면 쉽게 받을 수 있는 음악에는 마음이 담기지 않지요. 금방 질리고 말 거예요. 무엇이든 그렇지만, 스스로 움직이고 노력해서 얻어낸 것은 쉽게 버리거나 그만둘 수 없어요.
(p107) 음악이란 '도레미파솔라시도'라는 정해진 음을 조합할 수밖에 없지요. 말하자면 작곡이란 한정된 음을 가지고 음악을 구축하는 작업이지 갑자기 영감을 떠올리는 일을 계속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모티프가 되는 멜로디나 리듬 같은 단서는 확실히 있지요. 하지만 그건 종잡을 수 없는 아이디어에 불과해요. 그걸 어떻게 잘 구체화할지,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해 나갈지 생각하면서 음악을 만드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곡은 꽤나 성실한 작업이에요.
(p183) 말이란 아무것도 아닌 대상에 풍부함을 불어넣는 존재여야 한다. 플라톤이 한 이야기 이죠. 서로의 관계를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211) 말은 공통성을 전제로 합니다. 상대방과 자신이 똑같은 대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상태를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거지요. 다시 말해 상대방의 뇌와 자신의 뇌가 똑같이 작동해야 해요.
(p212) 공감할 수 없는 감정을 전면에 드러내면 타인은 반드시 경계하니까요 사람들은 감정이 각자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원래 감정은 공감하는 거예요. 논리와 마찬가지로요. 뇌는 그런 식으로 사회적 동물이 서로 공통 요소를 갖게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p221) 맞아요 지나치게 개성적이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지요. 일반적인 부분이 없으니까요. 기본적으로는 공감을 추구하면서, 말하자면 생선회에 고추냉이를 살짝 얹듯이 개성을 끼워 넣는 것이 좋아요. 정의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완전히 독창적인 작품은 타인의 공감을 얻지 못해요(웃음).
(p223) 독창성이란 새로운 공감을 발견하는 겁니다. 공감받지 못하는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저는 수도 없이 봤어요. ..개성이 지나치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타인이 거의 공감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이 가장 어려워요. 그게 예술이겠지요?
(p238)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그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이 선명히 보이지요. 나이가 든다는 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씩 줄어든다는 것이라서 괴롭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새로운 시각도 많이 가지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나이를 먹어도 어떤 형태로든 계속 자극을 받고 자신을 항상 바꾸어 나간다는 마음이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특히 앞으로는 인생에서 노후에 해당하는 시기가 길어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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