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이야기

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 (1)

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 - 케네스 포메란츠, 스티븐 토픽


2016년 시작한 첫 책.  500여 페이지 분량에 흥미로운 소재라 금방 끝마칠수 있겠거니 했는데 예상 보다 진도가 덜 나간다.  하지만 흥미가 없다거나 내용이 지루해서 그런것은 아니고 관련된 사건들의 시간대를 되짚어 보다 보니 시간이 좀 더 들어가는것 같다.
이 책은 세계가 서로 떨어진 다른 지역이 연결되면서 부터 시장은 어떻게 형성이 되어 왔는지, 이를 위해 교통과 무역은 어떻게 정립되었고 각각의 물품들은 어떻게 교역을 발전 시켜왔는가에 대한 내용이 주제별 시간 연대기 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각 챕터가 모두 흥미롭게 쓰여있는데, 일단 차와 커피에 대한 내용부터 정리해 보고자 한다.

..유럽은 1600년대 부터 차를 수입하기 시작. 영국, 프랑스,네덜란드까지 차가 알려지기 시작하지만 유럽인들은 차를 일상 음료보다는 의약품으로 여겼기에 시장이 크게 형성되지는 않았다가 18세기에 수입량  급증하였음.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 감미료와 사회생활의 변화가 주요한 요인이 되었음

설탕은 18세기 전후로 부담없이 구입할 수 있었고, 산업혁명에 따른 공장 노동자들의 증가로 일과 중에 설탕친 카페인 한잔을 마시는 것이 일과로 자리 잡았음. 이것이 차 증가에 일조하였고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따라 차 수입의 증가로 무역 불균형이 계속되자 유럽은 차나무 확보에 나서게 되었고, 1827년에 자바, 1877년 실론에 시도하였으나 유럽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충분치 않았음. 인도 아삼 지역에 (강제적으로)차 플렌테이션을 만들었는데 초기에는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하였으나 1870년부터 1900년 사이에 아삼지역의 차 수출은 20배 증가

커피를 음료로 개발해 마시기 시작한 것은 1400년 무렵 예맨의 도시 모카에서 였다. 1500년이 되면 아라비아 반도 어디에서나 커피를 마실수 있게 된다.  커피는 무슬림들의 예배에 사용되었고 메카 순례를 왔던 순례자들이 커피 열매를 가져간 덕분에 이슬람 세계 전체에 퍼지게 된다(인도, 인도네시아 등.) 당시 중동 지역에는 마땅한 음식점도 부족했고 특히 무슬림들은 술집에도 들어갈수 없었기에, 커피하우스는 사람이 모일만한 유일한 곳처럼 되어갔음
(카페가 중동에서 발명되었으며, 대부분의 지배층은 사람들이 모이는것을 꺼려하여 커피를 부정하려하였음)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느리게 퍼졌는데, 무슬림들의 음료인 커피를 마시는것은 이교도적이라 여겨졌고, 입맛 그리고 가격탓에 18세기 후반까지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았다. 1665년경 오스만 제국의 사절단이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를 방문하면서부터 유럽에서 커피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역할이 강화되었는데, 이는 호사스런 연회의 자리에서 사절들이 유럽의 귀족들에게 커피를 따라준것이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나중에 비엔나 최초의 커피하우스 주인이 커피에 꿀과 우유를 첨가하는 방법을 고안, 유럽인들의 입맛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이렇듯 유럽인들의 커피 수요는 증가하였으나 1690년대 까지 커피는 예맨에서만 재배되었고 수공업적인 생산, 중간상인, 운송비로 인해 너무 비쌌기에 유럽인들은 대책을 마련.  결국 커피 묘목을 아메리카 지역으로 이전하여 재배하기 시작함으로써 예맨의 커피 독점은 깨졌고 1900년 무렵 예맨에서 재배한 커피는 세계 커피 생산량의 1퍼센트도 차지하지 못하게 되어, 항구도시 모카는 불모의 땅이 되어버리고 말았음...
결국 차도 그렇고 커피도 그렇고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 역할을 제대로 한 셈이다.

세계사 책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15세기 대항해 시대를 거쳐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서양이 우월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자기들에게 유리한 룰을 적용해 왔는데, 그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러한 변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먼 훗날 뒤돌아 보았을때 현재 우리도 큰 소용돌이 속에 있으나 역사적 변화의 유의미성을 인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나 역사적 큰 의사결정은 한 순간의 아이디어로 내려지기도 하는데 그 아이디어는 일순간에 나온듯 보이지만 변화되는 환경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이 역사의 흐름이라는 자양분속에서 배양되고 자라난 결과가 아닌듯 싶다.  물론 그결과에 따른 훗날의 역사의 판결은 상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1/13~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