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따지자면 나는 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였던 듯 하다.
중학생때까지 부모님으로 부터 책 좀 봐라 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었고, 고등학교때까지도 그닥 많은 책을 본 것 같지는 않다. 그나마 시험기간 동안 해야할 공부는 하기 싫고 마냥 놀기에는 양심에 찔리고, 해서 읽은 문학전집을 본 것이 고등학교 시절 대부분의 독서라고 해야 할까. 꼭 독서에 대한 흥미는 시험기간에 넘쳐났던 것 같다.
책읽기에 대한 생각이 바뀐건 아마 고3말기였던것 같다. 당시에 읽은 (기억에 남는)책이 데미안, 구토, 이방인 이였다. 고백하건데 당시에는 3권 모두 무슨 내용인지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른체 책을 덮었다. 심지어 구토(사르트르)는 작가 욕을 해가며 읽었었고, 지금도 다시 들쳐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아마 논술 준비한답시고-정작 논술은 안봤음-억지로 머리속에 우겨넣었던 것 같다.
이때부터 책에 대한 깊은 애정과 문학에 심취하게 된 것은 아니고, 또래들이 읽지 않은 책을 읽으면 약간 우쭐거릴 수 있네.. 라는 걸 살짝 느꼈던것 같다. 뭐 세상이 늘 그렇듯 서푼 짜리 노력으로 얻은 결과를 갖고 우쭐거리다가 세상 무서운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대학 입학 후에 맞이하게 되지만. 어찌되었건 이 때부터 '아 책 읽는 다는건 참 고급스런 취미가 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한 듯 하다.
대학에 가서도, 한동안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읽지도 않으면서 대출카드에 이력만 잔뜩 늘려놓던 차에 얻어 걸린 책이 "멋진 신세계-A.헉슬리"였다. 20여년 전에 읽은 책인지라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자유에 대한 잘못된 방향의 확대는 전체주의적 미래로 빠질 수 있구나, 특히 디스토피아적 유토피아를 묘사해낸 작품을 처음 접한지라 강한 인상이 남았다. 아마 이 책의 영향으로 화려하고 판타지 같은 영화 보다는 약간 우울하고 나름 철학점 관점이 들어간 SF영화를 찾아보는 허세를 떨었던것 같다. (좋아하는 영화를 묻는 질문에 꼭 블레이드 러너를 포함시켰다)
허세. 대학때 참 허세를 많이 부리고 다닌것 같다. 당시 좀 유명한 작가群-책 좀 보시나봐요, 라는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작가群-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밀란 쿤데라였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작품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상실의 시대가 내 느낌상 가장 핫했다고 여겨지나, 밀란쿤데라는 왠지 비주류 중의 주류 같은 느낌이였다.) 이 제목부터 철학책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유발하는 책은 읽기에 쉽지 않았다. 이후에도 허세의 끈을 놓치기 싫어서 그의 '느림'까지 읽어보았지만 문학 작품에서 남녀관계의 개방성을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표현한 점 말고는 작가가 의도하는 바에 도달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퇴근길에 잠실역에 있는 교보문고를 자주 들르곤 하는데, 옛 문고들을 새롭게 출간한 책들이 많이 있고 진열대 위에 놓여져 홍보가 되고 있다. 우연찮게 위에 언급한 세권의 책들의 진열된 모습을 봤다. 멋진 신세계,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데미안. 참으로 다시 집어 들고 싶게끔 예쁘게 잘 나왔다. 하마터면 감각적인 디자인과 반가운 옛 기억으로 구매할 뻔 했다. (이미 읽으려 사둔 도서들의 금액이 10만원은 넘을 듯 하다)
가끔 나는 왜 책을 읽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책봐서 뭐하게?'라는 질문을 한적이 있다. (뉘앙스상 책 많이 본다고 달라지는게 없을텐데 왜 시간들여가며 책보냐는 의미로 들렸다.) 재수없다는 식의 가볍게 툭 던진 멘트 였지만, 그 순간 나는 살짝 당황했었다. 한때 시험 공부하기 싫으니 시간 떼우기 용으로, 우쭐함과 허세감에 빠지기 위해서 였는데, 도대체 왜 이렇듯 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나는 책을 보려고 할까...
지금은 내 스스로에게 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책을 본다.
좀 덜 재수없어 보이자면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서 책을 본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함부로 의견을 내지않고 다양한 의견과 지식을 습득해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 내 생각을 정리하고자 책을 본다.
또 문학적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 본다. 나는 문장의 힘을 과신하는 편인데, 저자들의 메세지가 책 한권, 300여 페이지 내내 쓰여질 순 없다. 저자가 말하고픈 결론을 책 한권 내내 풀어내는 논리적 흐름들과 저자의 사고를 강조하기 위해 쓰여진 (나는 미처 생각치 못한) 정제된 문장들. 이런 것들이 나에게 희열을 준다.
서점에서 소시적 봤던 책들이 재출간 된 것들을 보며 간단한 소회나 적으려 했는데, 글 말미가 너무 거창해져버린듯 하다. 허세와 우쭐함은 이제 그만 버리고, 그저 독서가 주는 즐거움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살아야 겠다. 냉정히 현시점에서 이것 말고 다른 취미를 가질 특기나 재능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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