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균쇠 - 제레드 다이아몬드
총균쇠는 제목 부터 굉장히 매력적인 책이다.
최근 몇년간 교양인의 필독서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는데 외려 이렇게 된 이후로 선뜻 손이 안 갔는데, 그 이면에는 아마도 고작 한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이언 모리스 교수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가 이 분야 최고라는 오만도 있었고, 빅히스토리 관련 책은 충분히 읽었다는 우쭐함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다른 저서를 보다가 그의 지리 환경 결정론적 관점이 총균쇠라는 또하나의 벽돌책을 읽어보겠다는 의지를 주저하게 만든 면도 없지 않다.
회사 도서관에 여러사람 손을 타지 않은 듯한 깔끔한 개정판이 진열되어 있어서, 지금이야 말로 이 책을 읽을 때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내 책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책 표지 상태임을 부정하지 않겠다.)
앞서 말했듯,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의 관점이 내게는 상당히 매력적이였기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도 '여전히 지리적 환경이 모든걸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길게도 쓰는 구나 라는 생각을 감히 하면서 읽었는데,
'왜 서양이....'에서 강조한 외부적 환경변화에 따른 압력의 대응(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 같은)으로 서구가 앞서 나갈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면, 왜 그런 외부적 환경변화에 대한 반응이 서구에서만 일어났을까?
이는 결국 저자가 언급한 근접원인이 아니였을까, 근접 원인(Proximate Causes)이 발현될 수 있는 궁극 원인(Ultimate Causes)은 결국 지리적 환경이 좌우하는 것 아닌가, 결국 다른 작가들이 주장했던 국가별 차이의 궁극적 원인은 지리 환경적 요인이 아닌가 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물론 책 말미에 같은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책의 출간 연도를 보니 총균쇠는 무려 1997년에 출간되었다.
(내가 읽은)후속작들 보다 무려 10여년이 앞선 것임을 생각할때 당시에는 엄청난 충격이었고, 이후의 관련 저서들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거라 생각된다.
총균쇠를 읽고 나니 뭔가 숙제를 마친 느낌이다. 1997년에 이런 책을 쓴 저자에 존경심이 들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이언모리스와 대런애쓰모글로우의 관점을 더 선호한다.
가끔씩 서유럽의 환경과 문화적 성취들을 볼때마다 부러움과 시샘이 공존하는데, 이 차이가 지리적 결정론적 관점으로만 바라보면 '모든게 정해져있는 절대 변화될 수 없는 것'이라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는 여지껏 이뤄온 사회적 진보라는 것들이 너무나 무의미한 것이 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저자가 이런식으로 주장하진 않는다)
(p402) 혁신은 실제로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완전히 고립되어 있던 과거의 일부 사회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회 모두에서, 새로운 기술은 대부분 해당 지역에서 발명되지 않았고 다른 사회에서 발명한 것을 차용했다. 독자적으로 발명하거나 차용한 기술의 상대적 중요성은 주로 두 가지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하나는 그 특정한 기술을 발명하는 용이성이고, 다른 하나는 그 특정한 사회와 다른 사회들의 근접성이다.
(p406) 전파의 주용성과 그 전파를 가능하게 해주는 지리적 위치의 중요성은 강력한 기술을 포기한 이유가 다른 요인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사회들에서 찾을 수 있다.
(p409) 전파가 없으면, 외부로부터 기술을 습득하는 경우가 줄어들고, 기존 기술을 잃을 가능성은 증가한다.
(p638) 홍적세 이후의 발전 속도에서 아프리카가 유라시아보다 느릴 수 밖에 없었던 마지막 요인은 두 대륙의 중심축이 다르다는 것이다. 남북아메리카가 그렇듯 아프리카의 중심축은 남북 방향인 반면, 유라시아의 중심축은 동서 방향이다. 남북 축을 따라 이동하렴 기후와 서식 환경, 가수량, 낮의 길이, 작물과 가축의 질병 등이 매우 다른 지역을 지나야 한다.
(p640) 아프리카에서는 인간의 과학기술도 남북 중심축을 따라 느릿하게 확산했다. 토기는 수단과 사하라사막에서 기원전 8000년경 사용한 흔적이 있지만, 희망봉 지역에는 기원후 1년에야 도달했다. ...아프리카에서 사용하는 문자는 아랍인과 유럽인에 의해 외부로부터 전해진 것이 전부이다.
요약하면,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추정하듯 유럽인과 아프리카인 사이에 큰 차이가 있어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정복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지리적 우연과 생물지리학적 우연이 겹친 결과였다. ...달리 말하면, 두 대륙이 밟은 서로 다른 역사적 궤적은 궁극적으로 '부동산'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p679) 넷째 유형의 차이는 대륙별 면적이나 총인구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면적이 더 넓거나 인구가 더 많다는 것은 더 많은 잠재적 발명가, 더 경쟁적인 사회, 더 많은 혁신적 과학기술이 생겨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새로운 혁신을 채택하고 그걸 유지하지 못하면 경쟁 관계에 있는 사회에 의해 제거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는 압력을 더 많이 받기 마련이다.
(p680) 그러나 이런 환경적 차이를 언급하면, 역사학자들은 '지리적 결정론'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분개한다. 지리적 결정론이라는 명칭에는 부정적 의미가 함축된 듯하다. 인간의 창의성은 아무런 쓸모가 없고, 인간은 기후와 동물상과 식물상에 조건화되는 수동적인 로봇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이런 두려움은 잘못된 것이다. ...어떤 인간 사회에나 창의적인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 창의력을 활용하는 데 필요한 재료와 조건을 더 넉넉하게 제공하는 환경이 다를 뿐이다.
(p689) 중국이 유럽에 대해 갖고 있던 정지적 과학기술적 우위를 상실한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중국의 만성적인 통일 지향성과 유럽의 만성적인 분열 지향성을 이해해야한다.
(p692) 나는 내부 장벽이 낮은 곳에서 과학기술이 확산한다는 걸 강조했다. 중국의 지리적 연결성은 결국 약점이 되었다. 전제군주가 결정하면 혁신이 중단되고, 실제로 그런 사태가 반복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은 지리적으로 분열되어 수십 혹은 수백 개의 독립 소국이 서로 경쟁하며 혁신의 중심지가 되었다. ...유럽의 내부 장벽은 정치적 통일을 가로막기에는 충분했지만, 과학기술과 아이디어의 확산을 중단시키기에는 불충분했다. 중국의 경우처럼, 한 명의 전제군주가 유럽 전체의 연결망을 끊을 수는 없었다.
(p702) 좋은 제도는 지리적 요인과 아무 관계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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