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때의 기억
중학교때 매주 수요일 아침 1교시는 무슨 독서 시간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담임선생님 시간으로 한시간동안 집에서 읽을 책을 갖고 와서 읽는 시간이였는데, 보통의 아이들은 그시간에 만화책을 몰래 가져와 보던가, 의미 없는 책을 하나 집어 들고 시간을 때우곤 했는데, 어느 날 무슨 생각이 들어서 인지 나는 집에 있던 '이병철 자서전'을 들고갔었다. 그날따라 맨 앞자리에 앉아서 읽고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책을 홱 집어들고는 '이런 자본주의의 앞잡이의 책을 위인전 이랍시고 보는 거냐'라며 느슨하게 늘어져 있던 반 분위기가 팽팽해질만큼 큰 목소리로 이런 책을 보면 안된다는 설파를 한 기억이 있다.
그 당시 담임은 20대말~30대 초반의 남자 선생님으로 참 괜찮은 분이였고, 여지껏 보지 못한 수준의 합리적 태도로 학생들을 대했던걸로 기억한다. 물론 운동권이였고, 본인이 운동권이였음을 굳이 감추려 노력하지 않는 분이셨다.
국민학생 티를 채 벗어나지 못한 중학교 1학년에게 학기 초 아침이슬을 가르쳐 주며 국가가 금지곡과 금서를 정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셨던 분이 학생들에겐 본인의 판단으로 특정 책을 폄하하며 금했는데, 나는 당시 왜 '이병철 자서전'을 읽으면 안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고, 그저 담임이 싫어하니, 압수당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또 그렇게 재밌거나 읽기 쉬운 책도 아니니) 읽지 말아야겠다. 라는 생각이였다.
그때가 30년도 전인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순간에 담임선생님으로 인해 분함이 생겼다거나, 어떤 꽁한 감정이 남아있음이 아니라, 사고 흐름의 불일치가 강렬했기 때문이다. 아마 내 인생 최초로 경험한 인지 부조화 사례가 아니였나 싶다.
어제 퇴근길에 잠실 교보문고를 들렀는데, 분야별 베스트셀러 진열장에 '반일 종족주의-이영훈 저' 도서가 상위에 랭크되어 전시되어 있었다. 책 제목이 워낙에 자극적이고 절대 베스트셀러 진열대 상단을 차지할 수 없는 내용이라 신기해서 들춰봤는데 솔직히 뽑아낸 제목이 주는 강렬함에 비해 내용의 충실함은 기대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책이 출간되고 그래도 꽤 팔리는가 보구나 하는 신기함과, 이곳 지점장이 우파인건지 판매량으로만 따져서 베스트셀러 진열대에 올린 생각없는 사람인건지 라는 실없는 생각으로 집에 갔는데, 바로 조국 전 민정수석이 이 책에 대한 평한 기사가 떳다.
'구역질 나는 책', '친일파라 부를 자유가 있다'
이런 식의 평은 너무 저급하다. 저런 수준의 접근은 나같은 필부나 하는 소리다. 교수이고 학자라고 할 수 있는 분이, 더군다나 사회 지도층이 저런식으로 본인의 위치를 망각한 채 저급한 표현을 남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젊었을 당시 본인이 지향하던 세상에 역행하는, 말과 행동이 불일치 하는 모습은 내 중1 독서시간과 정확하게 중첩된다.
잘못행한 행위도 역사의 일부분이다. 과거에 일어난 일을 부정한다고 없어지거나 바뀌는 것은 아니다. 누가 했던, 잘못했던 발생한 사건을 역사로 받아들이고 나서야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해 사실 유뮤를 확인하고 토론하며 반대의견이지만 취할 수 있는 부분은 취하고 수용해야 보다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게 아닌가 싶다.
나와 다른 의견을 배척하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한자리에 머물러 있다 못해 변화하는 세상속에서 퇴화 하게 되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