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판타스틱 듀오

James & GH's Dad 2016. 7. 11. 02:05

 

오늘 인터넷 연예 기사를 보다가 '판타스틱 듀오'란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인터넷 상에서 다시보기를 찾아보던 중 아침이슬을 듣게 되었다.

양희은 이라는 가수가 일요일 저녁 시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아침이슬을 부르다니!

 

아침이슬.

 

내 학교 역사상 가장 꼴통스럽고, 좌편향적이고  심지어 학생운동시 고문으로 인해 교사 체육대회에서 어리버리한것이라는 판타지까지 보유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듣는 귀가 열려있었고 진보적이였던 동시에 가장 외형상 꼰대같이 보이려 애쓴 선생님-그것도 중학고 입학하자마자 담임 선생님-이 알려준 노래.

 

그 당시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그 노래를 반가로 애용했다.  심지어 극기훈련 코스에서도 군가스러운 노래를 선정해서 최대한 간결하고, 구호스럽게 불러야 할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멜로디가 살아있는, 심지어 5분을 넘는 '아침이슬'을 부르며 유격훈련 극기훈련의 매 코스를 뛰어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였다. 

극기 훈련이라는 억압적인 상황에서 자유를 논하는 노래라니(더구나 길기도 하다). 

우리는 그때 아무 생각없이 년초에 담임선생님이 알려줬기 때문에, 별다른 반가를 생각해내고 싶지 않은 게으름 탓에 열심히 그 노래를 극기 훈련장 내내 불러 제끼고 다녔다. 

전제적이고 엄중한 분위기를 연출해야만 하는 극기 훈련장에서 '아침이슬'이 매코스 마다 10대 소년들한테서 불러 제껴지는 상황의 불일치와  조교들이 통제하기도 애매한 그 언밸런스한 분위기의 곤혹스러움이란.  당시 그들 상식선에서 보통의 중학교 1학년 남학생들한테서 아침이슬이라는 노래가 나올줄 상상이나 했을까?

어찌되었건, '아침이슬' 이라는 노래는 우리 담임선생님이 의도했던, 그렇지 않던 내 teenage 시대 한켠에 인상깊게 각인 되었다.

 

부끄럽지만, 오늘 판타스틱 듀오를 보며 아침이슬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아무런 감정이입 없이 그냥 들었을 뿐인데, 저항할 수 없이 무작정 흘러내리는 눈물이라니.

25년전 중학교 시절의 기억을 소환한것도 아닌데, 무작정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내린 내 감정의 근원을 정의할 순 없지만, 노래가 가진 함의에 공감할 수 있는 나이가 된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문득, 과연 이 프로그램이 도대체 어떻게 해 왔길래, 이런 감동울 줄까? 라는 생각하에 지난 방송들을 찾아봤다.  

 

 

이.선.희.

 

와. 고백하건데, 내 여자 아이돌에 대한 동경의 시작은 이선희 였다.

강변가요제에서의 'J에게'를 듣고 나서부터 완전히 팬이 되어버렸고, 당시 발매되는 테입-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을 꼬박꼬박 구매해서 훈장처럼 과시하고 다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 중의 하나가 후리지아인데, 이는 아마도 그녀의 노래 가사 중에 나왔기때문일지도 모른다.

 

열린 음악회등 대형 무대에서 화려한 피날레를 담당하는 그녀를 작은 스튜디오에서 녹화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을 듯하지만, 그녀는 이 프로그램에서 아마추어 파트너를 잘 보듬어 가며,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감동을 선사해 주고 아름다운 이별을 한다.

 

경연 형태로 운영되는 이 방송에서, 역량 측면에서 위협적인 많은 도전자들이 있었다.

가창력이라는 잣대-고음 발성?-를 놓고 봤을때 이선희와 그녀의 조력자는 월등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5연승으로 마지막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소위 아름다운 퇴장을 했다. 


이들이 5연승을 해내가는 과정이 나에게는 마치 한편의 성장영화를 보는 듯 했다.

왜 그럴까, 싶었는데 아마도 타 참가자들은 눈앞의 경쟁에 대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현재의 강점을 '활용'할 생각만 했지, 끄집어내어 발달시킬 여유는 없었던 듯 싶다.

(방송상으로 봤을때) 이선희는 파트너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 내려하는 것 처럼 보인다.  그에 따라 파트너가 화답하고, 이게 어찌보면 5연승을 하게된 계기가 아니였을까.

 

사심가득한 팬심으로 미루어봤을때, 그녀는 진정한 멘토 역할을 한 것 처럼 보인다.

이 시대에 진정한 멘토를 필요로 하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이도록 프로그램 자체에서 의도적 편집을 했을수도 있겠지만. 어찌되었건 마지막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는 그녀들의 모습은 성장영화의 클라이막스인 마냥 멋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