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리더란 무엇인가
다시, 리더란 무엇인가 - 모식 템킨
올해들어 지금까지 2개월간 읽은 책이 일곱권이다.
그 일곱권 책들의 내용들이 이해하기 아주 어렵거나, 엄청난 벽돌책이 아니였다는걸 차치하고라도 예년 대비 꽤 많은 책을 읽은 셈이다. 년초에 '올해는 못해도 한달에 한권은 읽자'라는 심정이였는데 벌써 목표치의 절반(?)을 넘기게 되었다.
예단하긴 이르지만, 아마도 예년대비 한가해서... 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읽다보니, 대출기한이라는 압박 요인이 독서 의지를 유지시켜 준게 아닌가 싶다.
(물론 대출한 모든 책을 기한 내에 완독하고 반납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반납하러 가면서 또 흥미로은 책을 빌려오는 욕심에 영향을 받은 건지도.)
평상시에 리더십에 관련된 책들은 잘 안보는 편이다.
내 스스로 훌륭한 리더가 되고픈 계획도, 의지도, 기대도 없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리더십 책을 많이 읽음에도 그대로 실천하는 리더들을 찾아볼 수 없을 뿐더러, 더군다나 리더십 책에서 언급되는 사항과 반대로 행동하는 이들도 리더로써 승승장구 하는 현실을 보면서 '리더는 학습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리더십 책들에 대한 무용론' 같은 생각을 지닌 탓에 '리더십'이 제목에 언급된 책들은 지양하는 편이다.
그러던 차에, 페북에서 팔로잉 하는-깊이 있는 관점의 글들 뿐 아니라 따뜻하고 잔잔한 일상의 글을 포스팅 하시는-교수님이 추천한 책이 마침 서가에 있기에 무언가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집어왔다.
이 책은 일반적인 리더십 책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역사학자인 저자의 관점 탓일까,
기업이나 사회에서 바라는 이상적 리더십의 모습을 정의해 놓고 각종 사례들을 그 모습에다가 억지로 가져다 맞추어 무차별적으로 열거하며, '이 리더는 이런 리더십의 전형이다' 라는 리더로 보이기 위한 스킬에 집중하는 여느 책들과는 달리
리더가 내린 의사결정의 전후 배경에 더 많은 내용을 서술하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당시 리더가 보여준 그 행위가 어떠한 상황에서 이뤄졌는지에 대한 과정에 포커스하고, 그 의사결정의 과정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은 읽는 이의 몫으로 남겨둔다.
전체적으로 리더십이 직면하는 딜레마적인 상황과 그로 인해 드러내는 리더(십)의 양면적 모습 그리고 그 과정을 헤쳐나가는 리더들의 사례를 기탄없이 서술한다.
책의 말미에 서술한 문장으로 볼때 저자는 아무래도 공공선을 추구했거나 이뤄낸 리더들에게 좀 더 후한 평가를 내리는 편인 듯 싶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절대적인 공공선 같은 것을 분별화 내기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진정한 리더란 세상을(또는 공동체의 삶을) 한발짝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라 말하는 듯 하다.
(43) 마르크스가 보기에는 단순히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실제로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가 돼야 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철학자들은 이 세상을 갖가지 방식으로 해석해왔을 뿐, 결국 핵심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제법 역량 있는 리더라면 이른바 '제약의 테두리를 늘릴' 줄 안다. 즉, 사회적 역할, 문화적 영향력, 경제 체제, 사고 패러다임 같은 구조적 요인들의 틀을 완전히 깨지는 않으면서 힘을 가하고 적절히 조정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뤄낼 줄 안다.
(70) 루스벨트에게는 도무지 분석하거나 모방하기 힘든 능력도 있었으니, 모호하고 낙관적인 판에 박힌 문구들을 패기 넘치는 구호로 만들 줄 알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할 건 두려움 그 자체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97) 위기에서 사람들은 투사의 모습을 한 리더를 필요로 하기에, 어떻게든 그런 인물을 하나 찾아내기 마련이다. ..태생적으로나 기질적으로나 엘리트층의 일원이었던 루스벨트는 갖가지 결점도 있었지만, 상대와 언제 협력하고 언제 싸워야 하는지 잘 알았다. 대중도 루스벨트가 투사임을 알아보았다. 그는 대공황에 맞서 싸웠고, 나중에는 자신의 강점을 모두 쥐어짜고 정치적 역량을 총동원해 파시즘과 맞서 싸웠다. 그는 자신이 속했던 사회 상층 게급과 자신을 형성한 엘리트층의 제도와 맞섰다는 점에서 반란자이기도 했다. 루스벨트는 성자는 아니어서 정치적 및 군사적 면에서 자기 손에 들어온 권력을 모조리 활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숨을 거두는 날까지 그가 권력 자체나 자신의 영달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바라보고 리더십을 행사하려 했다는 점은 국민 대다수가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결국엔 그것이 루스벨트가 리더십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이 아니었을까. 권력과 공공의 이익은 모순되지 않는다는 점 말이다. 때로 그 둘은 하나이며 같다.
(365) 암베드카르의 주된 적은 식민통치가 아니였다. 주된 적은 억압 그 자체였다.
(366) 역사를 되돌려 간디와 암베드카르의 리더십이 어땠는지, 둘의 논쟁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살피며 우리가 얻는 가르침 하나는 역사 속의 리더를 반드시 우상처럼 떠받들지는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들을 왜 존경하는지, 우리가 그들을 존경하는 것이 맞는지, 아울러 합당한 이유들을 갖고 그들을 존경하고 있는지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왜 어떤 리더는 명예와 영광을 얻는데 다른 리더는 그렇지 못한지도 항상 물어야 한다. 간디와 암베드카르는 서로 다른 적을 맞아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싸웠으나 모두 투사였다. 최종 목표는 달랐어도 둘 모두 반란자였다. 또한 이들은 일면에서는 자신들이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선을 위해 엄청난 자기희생을 기꺼이 감내할 만큼 성자였다.
(370) 생각해보면 우리는 항상 혁신적인 리더를 원하는 듯 하다. 세간에서 '혁신적인 리더'라고 말할 때는 대체로 근본적인 차원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뤄냈다는 의미니까.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혁신적이라는 말은 중립적이다. 혁신은 좋은 것을 뜻할 수도 있고 나쁜 것을 뜻할 수도 있다. 혁신에 대한 정의는 단순히 리더가 어떤 일을 했느냐만이 아니라, 리더가 한 일을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396) 마가릿 대처의 사고방식으로 리더를 생각할 때는 제일 먼저,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리더십을 서열이나 낭만과 관련해 생각하면 이처럼 개인주의적 기조가 강해지기 마련이다. 리더십 하면 정부 조직 최상부의 한 사람, 옥좌에 앉은 왕 같은 누군가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 책에서 함께 살펴봤듯 리더십은 다양한 형태를 띨 수 있다. 집단 리더십이 있는가 하면, 이름 없는 리더십도 있고, 여기저기 분산된 리더십도 있다.
(416) "저(마틴 루터 킹)는 버밍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체 애틀랜타에만 나태하게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어딘가의 부정의는 모든 곳의 정의에 위협이 되니까요. 우리 인간은 상호 관계라는 벗어날 수 없는 망에 붙잡혀 있는 존재입니다. 이 망이 한데 짜여 운명이라는 한 벌의 옷을 이루지요. 무엇이든 한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결국 모든 사람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돼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