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프로메테우스의 금속

James & GH's Dad 2025. 1. 1. 17:52

프로메테우스의 금속 - 기욤 피트롱

새해를 앞두고 회사 일괄 연차였던지라 마지막 주말부터 새해 첫날까지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기간이었으나,
독감으로 인해 매년 마지막날 정례적으로 갔었던 동해바다도 올해는 가지도 못한 채 집에서 쉬는 기간 내내 앓아누운 상태로 허무하게 연휴를 날려 버리게 되었다.

누워서 잠과 핸드폰만 보기는 너무 후회가 남을 듯하여 억지로 책을 하나 꺼내 들고 꾸역꾸역 보고, 포스팅도 남긴다.
원래는 12월 두 번의 출장 중에 읽으려 트렁크에 넣어 둔 책이었으나 매번 그렇듯 출장 중에는 책을 쉽사리 잘 안 들게 된다. 숙소서건 비행기에서건.

책의 내용 대비 제목을 너무 잘 뽑아낸 것 같다. '프로메테우스'의 금속 이라니.
그리스 신화에서 '불'은 원래 신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물질이었는데,
프로메테우스가 그 '신들의 불'을 인간에게 가져다주면서 인간은 한 단계 발전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결국 희토류도 미래의 인간 세상에서 '고대의 불'과 같은 존재라는 비유라니  

책 초반은 희토류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같이 다루며, 친환경 기술에 대한 환상을 깨고 새로운 에너지 대안을 이슈화시키는 거라 생각했지만.
중반부터는 희토류의 주도권이 중국에 넘어간 현실과 머지않아 희토류 주권을 보유한 중국이 이를 레버리지 삼아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기술의 패자가 될 것을 경고하는 형태로 서술하고  있다. 아마 기술적, 환경 윤리적 우월감을 지닌 서구에서는 저런 인식을 미쳐하지 못했을 듯 하니, 위기감에 대한 환기 측면에서 대중적 관심이 높았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나에게는 상대적으로 우리나라가 어떤 패권을 다투는 국가가 아니라는 인식 탓에  저런 '경고'가 한 단계 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인상 깊었던 것은, 희토류(희귀 금속)를 빵에 들어 있는 소금에 비유하는 설명이었는데
빵 = 바위, 소금 = 희귀 금속
빵 한 덩어리에서 엄청나게 복잡한 정제 과정을 거쳐 얻어 내는 소금의 분량이 엄청난 광물 제련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희귀 금속의 분량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제련 과정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과 소비되는 물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태양광 발전이나 풍력 발전, 배터리 같은 친환경 기술들은 엄청난 희귀 금속들-엄청난 오염의 야기시키는 제련과정이 요구되는-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기술의 혁신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친환경 세상이라는 것은 신기루일지도 모르겠다.(최소 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내용에 비추어 말하면 ESG는 사기다!)  
제레미 러프킨이 엔트로피에서 기술한 것 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상의 열량(오염)은 증가할 수 밖에 없는 건 아닐까? 이를 역행하는 모든 수단들은 종국에는 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은 아닐까?




(p38)  우리 사회는 현재 자석 없이는 굴러가지 않게 되었다. 희귀 금속 자석이 없다면 세계의 움직임은 지금보다 훨씬 느려질 것이다. 다음에 냉장고에 잔뜩 붙여둔 각양각색의 알록달록한 자석들을 볼 때면 잊지말고 이 사실을 떠올려 보길 바란다.

(p70)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전환의 가장 첫 단계는 땅에서 지하자원을 캐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결국, 우리는 석유에 대한 의존을 희귀 금속에 대한 의존으로 대체해야 하는 셈이다. 코카인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서 헤로인으로 갈아타는 마약 중독자와 같다고나 할까. 우리는 인간 활동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줄여야 한다는 문제의 출발점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하나의 문제를 다른 문제로 바꿔치기했을 뿐이다. 우리는 현재 직면한 환경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열정과 함께 또 다른 위기를 향해 돌진하는 딱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p81) 친환경 마을은 희귀 금속 없이는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 어디선가 누군가는 희귀 금속을 채굴하고 제련해야 하며 상품으로 가공된 금속은 다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옮겨질 것이다.

(p99) 규제에 발목이 잡힌 업체들은 무수히 많은 불법 물질 제조를 중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품 생산까지 멈출 수는 없었다. 결국 유럽은 규제가 없는 나라의 업체들이 생산한 화학 물질을 구매해 사용했다. 녹색기술도 이와 똑같은 맥락이다. 중국과 서양은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전환을 위해 그동안 맡아온 역할을 서로 바꾸었다. 중국인들은 녹색 기술에 필요한 부품을 생산하기 위해 기꺼이 손을 더럽혔고, 서양은 생산한 부품을 사들여 친환경을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로렌스 서머스가 말했듯 세계는 더러운 자들과 깨끗한 척하는 자들로 양분되어 재편성됐다......... 서양은 희귀 금속 광산과 제련 공장을 중국으로 옮겼고 동시에 환경오염의 짐까지 옮겼다. 미국과 유럽은 자신들이 싼 똥을 최대한 먼 곳으로 치워버리기 위해 끈기 있게 시스템을 갈고닦았다.

(p110) 서양은 희귀 금속 생산을 타국으로 이전했고, 이는 후대에 21세기의 석유라는 짐을 물려주는 것 이상의 결과를 가져왔다. 서양은 잠재적 경쟁상대의 품에 귀중한 독점권까지 안겨주었다.

(p141) 현재는 중국이 세계 자석 생산량의 3/4를 차지한다. 한 마디로, 광물 생산 독점권을 가지고 있던 중국은 '자원을 원하면 기술을 내놓으라'는 협박으로 광물 가공 기술에 대한 독점권까지 확보한 것이다. 이로써 중국은 산업  가치 사슬의 두 단계를 독점하게 됐다. 중국의 희토류 전문가 비비안 우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머지않은 미래에 중국이 희토류 산업의 전체 가치 사슬에 개입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구조를 개편할 수 있을 거고요'. 그의 전망은 이미 부분적으로는 현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