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James & GH's Dad 2024. 9. 23. 10:55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최근 두 권의 하루키 에세이를 읽었다.
마음이 복잡한 탓인지, 어렵고 두꺼운 인문학 책보다는 소설이나 에세이 같은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계속해서  읽어나갈 수 있는 책들을 일부러 찾고 있는 편인데 그 목적에 퍽 잘 맞는 책들이었다. 워낙에 하루키를 좋아하는 데다가, 소설에서 느껴지는-캐릭터들의 자의적 고립에서 배어 나오는- 특유의 고독한  분위기가 아닌(일부 묻어 있기는 하지만) 훨씬  편안하고 수다스러운(?) 분위기로 하루키 자신의 일상에 대한 단상들을 풀어내었기에, 시간의 흐름에 의식을 맡겨 페이지를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예전 읽었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좀 더 자전적 회고록 느낌인 반면

두 책이 에세이라는 형태에서 유사하지만, 각각 전달해 주는 느낌은 다른데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마라톤을 통해 '나이듬'과 '고독'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되는 교훈(?) 적인 느낌을 주며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읽는 내내 편안한 느낌과 '역시 하루키스러운 일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느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취향은 달리기를 할 때.. 에 좀 더 맞는 것 같다. 인상 깊었던 문구들도 많았고...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체험하는 것이고, 거기에서 느끼는 감정 역시 처음으로 맛보는 감정인 것이다. 그 이전에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일이라면, 좀 더 분명하게 여러 가지 일을 따져볼 수 있을 테지만, 아무래도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히 치부하기는 쉽지 않다
지금 나로서는 자질구레한 판단 같은 것은 뒤로 미루고, 거기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우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와 같은 괴로움이나 상처는 인생에 있어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이다,라는 점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타인과 얼마간이나마 차이가 있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자아란 것을 형성하게 되고, 자립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유지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타인으로부터의 고립과 단절은 병에서 새어 나온 산처럼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고 녹여버린다. 그것은 예리한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보호하는 동시에, 그 내벽을 끊임없이 자잘하게 상처 내기도 한다.

건전한 자신감과 불건전한 교만을 가르는 벽은 아주 얇다. 젊었을 때라면 확실히 '적당히 해도' 어떻게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혹사시키는 연습을 하지 않아도 이제까지 쌓아왔던 체력의 축적만으로도 무난한 기록을 올릴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 지불해야 할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것밖에는 손에 넣을 수 없는 나이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리 노력을 해본들, 아마도 젊은 날과 똑같이 달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별로 유쾌한 일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일인 것이 분명하다. 나에게 역할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에도 역할이 있다.

자기 몸이 변화해 가는 것을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젊었을 때보다는 변화에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체념하고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만으로 해나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인생의 원칙이며, 그 효율의 좋고 나쁨이 우리가 살아가는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은 아닌 것이다.

마라톤 마을의 아침 카페에서 나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찬 암스텔 비어를 마신다. 맥주는 물론 맛있다. 그러나 현실의 맥주는 달리면서 절실하게 상상했던 맥주만큼 맛있지는 않다. 제정신을 잃은 인간이 품는 환상만큼 아름다운 것은 현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나이듬에 대하여, 하루키의 말이 맞다.  하지만 어제의 나이듬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또 오늘 더 나이든 나를 맞이해야 하니 좀처럼 익숙해지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