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연필로 쓰기

James & GH's Dad 2019. 9. 2. 22:52
좋아하는 한국 작가를 꼽으리면 이문열과 김훈이다.
두 노작가들간 일치되는 성향은 많지않다고 보여지지만, 이상하게도 내게는 둘다 작가로서의 고집스런 모습이 묘하게 일치한 듯 느껴진다.
이문열 작가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사람의 아들'을 읽고 느꼈던 잊을수 없는 충격적인 주제의식으로
김훈 작가는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에서 보여준 화려하고도 묵직한 느낌을 주는 문장력에 감탄했었다.

어쨌든, 가볍게 읽을 마음으로 김훈의 에세이 집을 골랐는데.

일단 가볍지만은 않다.

나는 문장력 좋은 작가가 주변 일상을 보면서 자기만의 관점을 통해 풀어나가는 것을 기대하며 책을 골랐는데, 그 관점에 일상보다는 사상이 많이 가미가 되어 있어 읽는 중간 좀 불편했다.

편한한 마음으로 들어간 교양 수업에 전공 강의를 접한 느낌이랄까?
일산 호수 공원의 글이나 오이지를 먹으며 같은 글들을 접하고 싶었는데,

세월호 이야기며 반공 이야기, 권력자들에 의한 피해 이야기 등을 읽으면서 평온함을 얻고자 했던 기대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한겨례 신문에 기고했던, 김훈 작가의 따뜻한 시각을 좋아한다.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살기 위해서 밥을 먹고, 배설을 한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모두에게 평등할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시각.

이 책에서도, 초반에 밥과 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모두가 기품있게 사는 척 하지만 밥과 똥은 우리가 기품있게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일들이라고.
전쟁 이후 서울로 난민들이 모여들었는데, 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하루하루 끼니를 해결하는 것과 분뇨를 처리하는 것이였다는 내용을 보면서, 어릴적 분뇨차가 길거리에 자주 보였던 기억과 집 앞에 배수구가 흘렀는데 왜 퀴퀴한 냄새가 끊이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요새 서점에는 온갖 수필집이 많이 나온다. 유명작가부터 듣도보도 못한 작가까지. 아마도 일상의 소소한 감성을 끄집어 내는데 재능있는 사람이 많은 탓이 아닐까 싶고, 최근 독서 트렌드가 그런것이 아닐까 싶다. 나도 그 분위기에 동참하여 내공있는 노작가의 거창하지 않은 소회같은 고백들을 접하고 싶어서 이책을 골랐는데, 수필에서 조차 김훈 작가는 아직도 피가 펄펄 끓는듯하다 


연필로 쓰기란 책은 나의 기대와 살짝 일치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쩌면 나는 피천득의 인연이랄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 처럼 그저 잔잔한, 바람에 따라 일렁이는 호수와 같은-힘있게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같은 글이 아닌-내용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